너무나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2019. 7. 12. 10:52뜬금없는 끄적거림/뜬금없이 혼잣말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나의 첫 근무지는 아주 시골 중 시골이었다. ATM기도 없었고, 가게는 해가 지는 시간을 기준으로 문을 닫았고, 그 흔하디 흔한 편의점 하나도 없었다. 시내(읍내)를 나가려면 자동차로 꼬불꼬불한 산길을 30분을 달려야 했고, 그나마 영화라도 보려면 거기서 한참을 더 나가야만 했다.

 

신입인 내가 근무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였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낚시와 별자리 감상이 전부였다. 하지만, 나는 별자리에도 낚시에도 관심이 없었다. 퇴근 후 그저 멍하니 tv를 보거나, 아님 시골길을 무턱대고 드라이브 하거나 이런저런 책들을 사서 주구장창 책만 읽거나...

그러던 중 2년차 때, 어찌어찌하다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쳐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을 때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일주일에 이틀, 하루에 1시간 정도의 수업이지만, 게다가 나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도 없는 말 그대로 자원봉사였지만 무료한 시간을 의미 있는 무엇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한글교실에 참가한 사람들은 다양한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우즈벡, 태국 등등... 그렇다. 국적에서 짐작되듯 이 사람들, 한국으로 시집 온 외국인이었다. 한국어가 안되니 의사소통이 힘들고, 시골의 어르신들과 소통이 안되니 감정이 생기고, 그래서 싸움이 잦아지는 경우가 있으니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글을 가르치자! 라는 것이 당시 내가 참여한 한글 교실의 모토였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한국어 강사가 그런 시골까지 올 여유가 없었으니 가르칠 만한 사람을 찾다 찾다 그나마 내가 얻어걸린 셈이었다.

 

참가자들은 다양한 레벨의 한국어 실력을 갖고 있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부터 간단한 대화가 가능한 사람도 있었고, ? 왜 한글교실을 다니지 싶을 만큼 능숙한 사람도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던터라 어느 수준에서 수업을 진행해야 할지 매우 난감했다. 높은 수준의 사람은 좀 더 높은 수준이 필요할 것이고, 낮은 수준의 사람은 기초부터 시작해야 하겠지만 이들이 한 교실에 모여 있으니 어디에 수준을 맞춘다해도 누군가는 지루하고 힘든 수업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준별로 최소 두 클래스로 나누는 것도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참가자들의 사정(시골이다 보니 늦게까지 일을 한다거나 먼 거리를 가족 중 누군가 데려다줘야 한다거나 등등)으로 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보니 참가자 간에도 의사소통이 매우 어려웠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어를 제외하면 할 수 있는 외국어가 전혀 없었고, 참가자들은 자신의 모국어를 제외하면 할 수 있는 외국어가 없었으니 무언가를 설명해도, 무언가를 질문해도 알아듣지 못해 서로가 웃기만 한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래서일까, 처음 시작할 때 스물 명 남짓이었던 한글 교실이 열 명 이하로 줄어든 것 이유가... 물론 내 수업이 지루하고 재미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 18개월의 시간은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가끔 그 때의 한국어 교실이 생각나곤 한다. 내 능력의 부족, 환경적 어려움 등으로 제대로 된 한글 교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힘겹게) 들어보았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의미가 되었다. 그들은 재미없고 지루하고 따분한 수업이었을지 모르지만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생각을 나누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사실 일본어를 공부한 계기도 그러했다. 형식은 풋살이었지만 국적은 달라도 하나의 언어로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 타인의 생각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그래서 서로의 관점의 차이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의 발전을 도모하고, 나아갈 길을 준비한다는 것... 비록 내가 아닌 다른 분의 모습을 통한 간접 경험이었지만 2015년 고베에서의 감동(!)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물론 게으른 탓에 정작 일본어를 시작한 것은 그보다 한참 뒤의 일이지만 만약 그 때 그 감동이 없었다면 나는 일본어를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 때의 무대가 고베가 아닌 베트남이었다면 지금쯤 베트남어를 공부하고 있을지도... ^^)

 

 

일본어를 공부하고 좋지 않은 점이 있다면, 일본을 자주 가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아무래도 돈을 많이 쓰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요즘처럼 한일관계가 냉랭해질 때면 어김없이 좋지 않은 눈총을 받는다는 것...

 

하지만 그보다는 일본어를 공부함으로써 얻은 이득이 더 많다. 피상적으로만 생각하던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고, 그 궁금증을 해결하려 나름 노력을 해보았다는 것, 그것으로 일본인들의 생각의 근원이 무엇일까 조금, 아주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것(옹호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이 단지 일본 뿐 아니라 내 삶에서 다른 누군가를 대하는 기본자세로 변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다른 누군가를 쉽게 단정짓고 판단하지 않으며 내가 확인하지 않은 내용으로 상대를 단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위해 상대의 생각을 듣게 된다는 것...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만 보면 한국과 일본은 쉽게 가까워지기 힘든 나라이다. 그리고 그 힘든 간격 사이에는 건널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감정의 골이 존재하고 상호간의 정보 부재의 긴 터널도 존재한다. 한국은 한국에서의 이야기만 들을 수 있고, 일본은 일본에서의 이야기만 들을 수 있으며 한국 안에서도 A를 말하는 사람, B를 말하는 사람, C를 말하는 사람이 존재하며 그 중에는 한국 사람의 생각과 반하는 이야기도 있고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이야기도 있다. 오히려 철저히 일본의 입장에서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가치관은 옳고 그름의 문제로 단정 지어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거니와 그렇게 규정짓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불편한 문제를 야기한다.

 

나는 누군가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며 누군가의 생각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다. 다만, 그것을 내가 공감하느냐 아니냐는 나의 몫이며 그 생각에 동참하느냐 아니냐 역시 내가 판단할 몫이다.

 

타인과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단지 입을 열어 단어와 문장을 쏟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야기 한다는 것은, 대화를 한다는 것은 단지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야기가 산으로 갔다 바다로 갔다 이제는 안드로메다를 여행 중이지만 한일관계이든 혹은 한 나라 안의 사람들이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대화의 무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10年も過ぎたことだったけど、外国人のためにハングルを教えたことがある。
1週間に2日、1回に1時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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約20人の学生(!)らは、中国、ベトナム、タイ、カンボジア、ウズベキスタンなど色々な国から集まった人たちだった。
参加者の韓国語の能力レベルは様々だった。ハングルが全然知らない人から"なぜハングル教室を通ってるんだろう?"と思うほどの人まで···
私はどのレベルでハングルを教えたらいいか毎日悩んだが、それより「私が韓国語以外に外国語がㅇできない」というのが最も大きな問題だった。
さらに、参加者たちも母国語以外に外国語ができないため、何かを説明してもちゃんと伝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し、質問を受けてもお互いに向き合って笑っているばかり場合が多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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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れなりに事情があった」と言っても、果たしてそのような授業が参加者に役立ったのだろうか? 考えて見ればとても恥ずかしいことだったが、たまにその日の韓国語の教室が思い出される。
私の能力が十分でなっかたから、ちゃんとハングル教室ではなかったと思うけど、そして参加者たちにもつまらない授業だったと思うけど、それでも、「様々な国の人々に会えること、参加者たちの考えを聞けること、自分の考えが言えること、なんとかコミュニケーションができるということ。」それが人生にとってどれほど大きな価値があるのか、その時、初めて悟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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まだ、韓国と日本は歴史的に、政治的に近づくのは易くない。韓国と日本の間には海の深さより深く感じられる感情の海があり、とうてい渡れないような広い海も存在する。
韓国は韓国での話だけ聞くことができるし、日本は日本での話だけ聞くことができる。韓国でもAを言う人、Bを言う人、Cを言う人がいるし、その人々の中には一般的な韓国人の考えと反対の人もいる。むしろ日本の立場で話す人も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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しかし、「どういう考えをいだいているか」ということは、是非の問題ではない。人の価値観は、善し悪しの問題と断定して話せるテーマではなく、もしそのように語る人がいったら、非常に危険で不都合な問題になるかも知れない。
私は相手が「どんな人なのか」は関係ないと思う。相手の意見は相手なりに価値があり、それは互いに尊重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う。(ただし、「相手の意見に同意するかとうか」は自分の選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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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今、私の話が山を越えて、海を渡って、宇宙を旅しているけど、韓日関係でも国内人も、「他人と話をする」とういうことは......
それはただ、口から単語が出てくることを意味するわけではない。コミュニケーションというは自分の言葉だけを見せることを意味するわけではない。今の私たちに(韓国と日本政府だけでなく)必要なものは「まともな対話のテーブル」ではないかと思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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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して、政治家の政治力の争いは口ではなく、彼らの頭を見なければならない。政治家の口は心と頭を代表しないということを私たちはすでに経験で知っているか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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間違った表現がいっぱいだと思いますが、私の心と考えが伝えられたらいいと思います。
文を書くうちに基本から勉強になりましたが、間違った表現は教えてくださればありがたくいただき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