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4. 선의의 행동이라 해도...

2019. 12. 5. 11:08뜬금없는 끄적거림/뜬금없이 혼잣말

요즘 짬짬이 읽고 있는 책 중, “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라는 책이 있다. 작가의 경험에 비추어 화가 나는 여러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중 한 에피소드를 읽다 배꼽을 잡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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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하얗고 귀여운 개 인형을 세탁소에 맡겼는데 눈과 입이 엉뚱한 것으로 달린 채 돌아와 무서워져버렸다는 이야기인데 한참을 웃고 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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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스물이 갓 넘었을 때, 혼자 살던 내 방에 어머니가 갑자기 찾아오신 적이 있다. 오랜만에 방문인지라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잔뜩 챙겨오셨는데 하필 그 날 아르바이트가 있어서 어머니를 마중 나갈 수가 없었다. 결국 어머니 혼자 내 자취방을 찾아가셨고, 텅빈 냉장고를 열어보고는 마음이 아프셨다고 한다. 그리고 널려 있는 옷을 보고는 대체 뭐하고 사는지 이렇게 형편 없는 옷 뿐인거냐고 탄식하셨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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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어머니가 탄식하신 그 옷은 찢어진 청바지 였다는 것. 당시, 찢어진 청바지란 그리 흔한 물건이 아니었기에 시골의 어머니 눈엔 그저 정체불명의 바지 일 뿐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바늘을 찾아 그 찢어진 부분을 정성스럽게 꿰매기 시작하셨다. 냉장고는 비어 있고 옷은 이 모양이고 어머니는 마음이 매우 아프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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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를 꼼꼼히 꿰매시고 허리를 폈더니 이번엔 벽에 걸린 흰 T가 눈에 들어오셨단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글자가 가득한 흰 면티. 아~ 그건... 당시 내가 힘들게 받은 모선수의 싸인. 일부러 고이고이 벽에 걸어 놓은 건데 어머니는 지저분한 그 낙서를 열심히 빨아보려 애쓰셨다. 하지만 매직으로 그려진 싸인이 쉽게 지워질리 없고, 어머니는 한숨을 푹 쉬시며 그걸로 방을 닦으셨다. 당시로서는 나의 가장 큰 보물 중 하나였는데 한 순간에 걸레가 되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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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읽은 그 세탁소 주인이나 그 날의 어머니나 두 분 모두 상대를 골려주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분명 선의의 행동이고, 아쉽게도 그 결과가 참혹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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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도움이란 무엇인가, 돕는다는 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분명 도움이란 선의를 갖고 상대에게 플러스적인 무언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간혹 선의를 품었으나 악의로 오해받거나 혹은 상대에게 마이너스적인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다. 나는 분명 도움이 되길 바랐으나 오히려 도와주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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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 하나는 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상대를 바라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행동이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또는 그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 그리고 그가 반가워 할까를 생각하기 보다 도움이라면 모든 것이 다 좋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다보니 나는 도움이라고 생각하지만 상대에게는 오히려 간섭이거나 혹은 지나친 배려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선의의 도움이라면 결과가 참혹하더라도 우선은 그 마음을 생각해야 하지만 결과가 참혹하다면 그 선의가 때론 다른 성질의 것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세탁소 주인은 떨어져 나간 인형의 눈이 미안하여 나름 이쁜 눈을 달아주었지만 작가에게는 무서운 인형이 되었고, 다시는 인형을 가지고 놀지 않게 되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날 세탁소 주인의 선의는 작가에게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어머니가 나의 청바지를 모두 꿰매어 버린 건 아들에 대한 애정과 선의에서 시작되었지만 그날의 나에게 과연 그것이 선의로만 다가왔을까? 선의로 다가왔다면 마음의 상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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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도움을 전할 때는 상대의 입장과 상황을 먼저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무턱대고 안기는 도움은 때때로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고,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아니, 누구를 돕겠다는데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해야해? 뭐가 그리 까칠해?!"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고, 복잡한 일도 아니다.
돕겠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긍정적 결과가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그런 선의가 왜곡되는 것보다는 잠시 멈추어 들여다 보는 쪽이 더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