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에 페이스북에 끄적였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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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이 2014년인지 2015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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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언제나 나의 생각보다 빠른 것이어서 감각을 무디게 하고 감정을 흐려놓기 일쑤다. 시간이 흘러도 선명한 기억을 가진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매우 괴로운 일이겠으나 만약 취사선택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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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방문하기 시작한 때가 아마도 이 무렵이었을 것이다. 일본어가 유창하고 일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후배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부탁하여 3박 4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의 일정으로 일본에 갔을 때였다. 지금에서야 재밌는 에피소드지만 당시로서는 마음적으로 꽤 고생을 했었다. 일일이 설명하기란 조금 복잡하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끌려다닌 것” 가령 사진에 보이는 이곳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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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적이 있었던 일본 방문이었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고도 하루 정도의 시간이 남았을 때 후배가 데려간 곳이 ○○○성이었다. 그저 가볼 만한 곳이 있으니 들렀다 가자는 말에 막연하게 걷고 또 걷다 도착한 것이 ○○○성이었다. 멀리 서 있는 성 하나를 보고 “저게 뭐야?”라는 질문에 “지금 가고 있습니다”라는 대답.
일본 일정 내내 모든 질문의 답이 이런 식이어서 힘든 마음을 애써 눌렀지만 생각과 달리 너무나 현대적 건축물이었던 ○○○성에 조금 실망했었다. 그래서일까, 모든 것이 엉켜버린 기분.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은 독특하다 말하여지는 후배의 스타일을 그 때의 나는 제대로 알지 못했고, 낯선 땅에서 무언가 안내를 부탁한 입장이니 대놓고 투덜거릴 수도 없었다. 다소 불친절(!)한 안내자라는 생각이 가득했으나 대놓고 말할 수 없으니 그 날의 내가 후배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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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서 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길, 다소 표정이 어둡고 더 이상 말을 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 느껴질 무렵 낯선 현악기의 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듯 낯선 음색, 무언가 무미건조한 듯한 악사의 표정.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악사를 바라보았다. 연주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가 앉아 있는 저 곳과 그가 연주하는 곡조가 무겁던 마음을 잠시 놓게 하였다.
사람은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의도하지 않은 상황과 마주하고,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낯선 누군가를 만나기도 한다. 그가 거기 있었던 것은 자신의 의도한 목적이 있어서지 나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와 내가 서로 약속하지 않았어도 나는 그를 통해 잠시 위로의 마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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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일이 나의 의도와 뜻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일을 예상하고 그 예상에 맞춰 움직이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영향을 주고 받으며 그 영향은 다른 누군가에게로 혹은 다른 사회로, 다른 세대로, 다른 상황으로 뻗어나간다.
바람의 숫자만큼이나 스쳐지나는 사람들.
그 숫자만큼이나 스쳐오는 사람들.
우린 서로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지,
우린 서로에게 무엇을 받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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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그날의 일에 대해 언젠가 후배와 이야기 나눈 적 있다.
둘이 한참을 웃으며 그날을 이야기하는 동안 “이젠 후배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후배 중 하나로, 가끔은 존경스럽기까지 한 좋은 후배이다.(물론 그쪽도 그리 생각해 줄지는 의문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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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나라, 같은 문화로 살아도 서로를 몰라 오해하고 감정이 다치기도 하는데, 나라와 나라는 개인과 개인보다 더 많은 담과 벽과 골이 존재하겠지.
누구와도 싸우지 않고, 누구와도 비난하지 않고, 누구와도 빈정거리지 않고, 누구와도 업신여기지 않으며 누구와도 등을 돌리지 않는 세상을 보고 싶지만, 그건 50억 년 전에나 가능했던 일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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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두서없는 주절거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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