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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소비하는 방법

나의 여행은 대부분 즉흥적이다.

by CALSPER YOON 2022. 8. 29.

2022.08.29.

나의 여행은 대부분 즉흥적이다.

미리 계획을 세우거나 맛집을 찾아두거나 볼만한 곳을 점찍어 두기보다는 그때그때 현장에 도착하여 다음 장소를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행 계획을 세운다 해도 현장에 도착했을 때 빼거나 지워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만약 계획에서 차질이 생긴다 해도 다음에 다시 올 이유로 남겨 두곤 한다. 하루 종일 숙소에서 잠을 자거나 어느 공원에서 책을 읽거나, 맥주 한 캔으로 오후 시간을 보낸다 해도 전혀 아쉽거나 후회스럽지 않다. 나에게 있어 여행은 무엇을 보고 먹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나를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것이니까...

 

다만, 아이들과 함께라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큰아이는 그냥 뒹굴뒹굴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OK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하루 종일 뒹굴뒹굴하게 두는 건 왠지 미안한 마음이다. 대신 일정은 최소화하여 하루에 많아야 두 곳 정도...

 

 

금요일 퇴근하고 딸아, 우리 내일 바다 갈까?”라고 물었다. “무조건!!!”이라고 외치는 딸의 대답에 , 숙소를 예약해야 함'을 깨달았다. 강릉인데, 과연 내일 방이 있을까... 4명이 들어갈 수 있는 방이 과연 있을까... 찾아보고 뒤져보니 방이 없지는 않으나 하룻밤 잠만 자기에는 너무 비싼 가격. 주말이고 강릉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비싸도 너무 비쌌고, 방은 너무나 부족했다. (알고 보니 무슨 대회 결승이 있다고 했다.) 뒤지고 뒤져 운 좋게 바다 앞 오래된 곳을 예약했지만 아~ 무계획성이 늘 좋은 건 아니구나~ 하고 잠시 쓰게 웃었다.

 

출발할 때, 가보고 싶었던 곳 하나와 가고 싶은 곳 하나를 정했다. 하나는 토요일에 하나는 일요일에... 나머지는 잠시 바다에 들리면 되는 것이고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면 그때 생각하기로 했다.

 

속초에 들러 점심을 먹고 가보고 싶던 곳에 도착하니 임시 휴업이다. 원래는 휴업일이 아닌데 아마도 여름 성수기 기간을 보낸 뒤 이제야 뒤늦은 휴가를 떠났나 보다. 휴업인 줄 알았다면 굳이 속초에 올 이유는 없었지만 덕분에 바다에 실컷 빠질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한다. 바다에 다녀온 뒤 잠시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 여행은 이런 거지. 고맙게도 작은 녀석이 피곤하다며 평소엔 자지 않던 저녁잠까지 자 준다.

 

저녁을 먹고 이튿날 강릉에서 무얼 할까 아내가 몇 군데를 찾아본다. 그래, 가고 싶던 곳은 그다음이니 일단은 아내가 찾은 전시관을 가자!

그리고, 전시관은 경이로운 빛과 유리와 거울의 향연!

황홀한 아름다움에 빠져 잠시라도 눈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어디든 가만히 앉아 멍하니 하루를 보내도 좋을... 붐비는 사람들, 오가는 발걸음이 있지만 그 조차도 하나의 풍경, 실루엣의 경치가 되는 착각... 시간은 정해져 있고, 더 오래 머물 수 없음이 너무나 아쉬운 순간이다.

 

 

그래도 남은 일정이 멍 때리러 가는 것이니 아쉬움은 다음의 기회로 남겨 놓기로 한다. 네비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부푼 마음으로 출발... 시간보다 내가 더 빨리 달릴 수 없음이 한스러운 순간들... (과학적으로는 따지지 말자. 더 빨리 늙...)

하지만 도착하고 보니 정기휴일. 분명 지난번에도 일요일이었는데 왜?라는 생각. 다가가 읽어보니 넷째 주 일요일은 정기휴일이란다. 이런... 미처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내 잘못이다.

 

다른 장소를 급히 찾아 잠시 쉬는 동안,

이번에 계획했던 모든 것들이 다 실패네. 가고자 했던 곳들이 다 문을 닫았어. 그러니까 말이야, 계획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인지 증명된 셈이야라든가,

그냥 도착해서 정했던 것들은 다 좋았어. 식당도 좋았고, 밥도 좋았고, 전시관도 좋았고, 지금 여기도 좋고... 그러니까 무계획성이 좋은 거야라든가...

말도 안 되는 대화들을 이어갔다.

정신승리, 자기위안, 자기만족을 위한 우스운 변명이지만, 그 대화들은 써니와 나의 여행관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PS: 나의 무계획성 여행은 해외로 나갈 때 확실해진다. 가령, 순수 여행으로 일본을 갈 때가 대표적. 어떤 경우는 출국 날짜와 2일 치 일정만 정하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 남은 일주일간의 숙소도 정하지 않았고, 오늘 밤 내가 어디에 있을지는 점심을 먹을 때조차 알지 못했다. 해외임에도 그렇게 몇 차례의 경험이 있다. 그런 경험이 점점 나를 무계획성으로 밀어 넣는 듯하다. 아마도 나는 다른 사람들과 여행하는 것이 그래서, 불가능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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